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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단오제전수교육관

GANGNEUNG DANOJE

천년의 어울림 강릉단오제

단오의 역사 이미지

옛날 동예라는 나라에서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축제를 열었다. 무천이 가을에 했던 추수 감사제의 성격이라면, 5월 단오는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시기의 축제라는 성격이 있다. 그러니 강릉단오제의 역사는 매우 깊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역사책인 고려사에는 태조 왕건을 도와 왕순식이 후백제의 신검을 토벌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왕순식이 태조에게 대관령성황사에서 제사를 지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관령과 단오제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 남효온은 추강선생문집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강릉에는 매년 봄에 대관령산신제를 지내고 휴식을 취하며 놀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강릉단오제를 직접 보고 기록을 남겼는데 강릉단오제에서 제사를 받는 대상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썼다.

강릉의 역사책인 임영지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 “매년 4월 보름이면 강릉관아의 관리들이 무당들과 대관령에 올라가 제사하고 신목을 베어 모시고 마을로 내려온 후, 단오가 되면 무당패가 굿을 한다.” 고 했는데, 그 내용이 오늘날의 단오제 풍경과 비슷하게 쓰여 있다. 굿을 하지 않으면 비바람이 곡식에 피해를 주게 되고 짐승의 피해도 있다고 하였다.

단오의 역사 이미지

수 천 년 동안 지켜온 강릉단오제는 원래 김유신을 비롯한 강릉 관련 열 두 신을 모셨으며 1890년대에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땅 속에 묻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의 간섭과 금지에도 강릉시내 지역에서 상인들을 중심으로 그 맥을 유지해왔다. 원래 관아를 비롯한 시가지에서 했으나 일제에 의해 상인들이 남대천 강가에서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해방 후 강릉시가 담당하여 강릉단오제를 치르다가 1976년부터 강릉문화원이 강릉단오제를 담당해왔으며, 2006년부터 강릉단오제위원회가 주최 주관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행사의 전반적인 기획 운영을 강릉단오제위원회가 담당하지만 문화재행사 분야는 강릉단오제보존회가 담당하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옛날부터 시민이 중심이 되어 관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진행되는 축제였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강릉시장을 비롯한 시민대표들이 단오 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강릉시에서는 시장이 단오에 쓸 쌀과 누룩을 단오제사 담당자들에게 내려주는 일을 재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