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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하는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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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율곡선생께서 돌아가신 날은 1584년 1월 16일(음력)입니다.

돌아가신 날 제례를 올려야 하나
추운 겨울에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제례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율곡기념사업회에서 임의로 날을 택하여
1962년 11월 6일에 제 1회 제례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조금 추운 시기라
다시 1년중 가장 맑고 화창한 날씨를 택한것이 10월 26일입니다.
답변 일부 사람들이 사임당의 이름을 인선(仁宣)이라고 쓰고 있는데
그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근거도 없이 사임당의 본명을 인선이라고 쓴 것을
또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수용하면서 발생된 오류입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여성들이 그랬듯이
사임당 역시 이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가 재산을 분재해 준 문서에도
다섯 딸들의 이름은 기록돼 있지 않고 사위들의 이름만 기록돼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종대왕의 어머니 민씨, 이순신장군의 어머니 변씨,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등도 이름이 전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이름이 전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사임당은 호가 전하고 있어, 평산 신씨라고 부르지 않고
사임당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임당의 호는 여러 가지가 전하지만
율곡 이이가 외할아버지(신명화) 행장을 쓰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사임당(師任堂)이라 기록했기 때문에
師任堂으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답변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씨는 딸만 다섯 낳았습니다.
이씨는 생전에 다섯 딸에게 재산을 나눠준다는 내용의 분재기를 작성하였습니다.
이 문건에는 다섯 딸에게 재산을 고루 분배한 내용이 기록돼 있는데
그 뒷부분에 외가댁 묘소를 보살피라며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
오죽헌 기와집과 주위 전답을 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권처균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기와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었습니다.
이렇듯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지어진 집주인의 호가
언제부턴가 집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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