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현사 제향
소개
향현사는 강릉지역에서 배출된 인물 중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한 인물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645년(인조 23) 강릉부사 강백년(姜柏年)과 퇴관한 지방인사 김충각(金忠慤)·김성원(金聲遠)·이상협 등의 건의로 향현(鄕賢)들의 행적과 얼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최치운(崔致雲), 최응현(崔應賢), 박수량(朴遂良), 박공달(朴公達), 최수성(崔壽城), 최운우(崔雲遇)의 위패를 배향하였다가 1802년(순조 2) 최수(崔洙)를,1808년(순조 8) 이성무(李成茂), 김윤신(金潤身),박억추(朴億秋), 김열(金說), 김담(金譚)을 더 모셔 총 12(賢)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고종 5년(1868)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려다가 미사액 서원 훼철령으로 복원하지 못하였다.
이후 1921년에 12향현 후손들에 의해 중건되었지만, 1995년 황영조 기념 체육관 건립으로 인해 강릉시 교동 238-2번지로 옮겨졌습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기와 지붕 초익공 양식으로 전퇴는 모두 원기둥입니다. 장대석으로 두벌대로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전퇴부분의 기둥 3주는 원형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웠고, 나머지 기둥은 모두 방형초석 위에 방주를 세웠습니다. 전퇴의 바닥은 흙바닥으로 구성하였고, 한 단 높게 만든 사당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천정은 연등천정입니다. 창호는 3칸 모두 2분합 띠살문으로 구성하여 중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퇴의 좌우 측면은 중방과 같은 높이에서 낮은 토담으로구획되어 있습니다.
1987년 기와 및 담장 보수가 있었고, 1990년 문간채 및 배수로 시설을 갖추었으며, 199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습니다.
부속시설로 대문과 재실(齋室)이 5칸, 직사(直舍)가 8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1931년에 향현의 언행록(言行錄)을 발간한 바 있고 2005년에 『신속강릉향현사지(新續江凌鄕賢祠誌)』를 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