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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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소개 > 일반현황 > 읍면동 지명유래 목록 - 번호, 지명, 유래 정보 제공
번호 지명 유래
9 삼산리(三山里) - 삼산리의 1산은 태백산맥의 낙맥(落脈)이 동대산으로 떨어져 부연동이 되고 2산은 진고개로 내려와
--장천동이 되고, 3산은 노인봉으로 내려와 청학동이 되어 삼산리라 하는데 지금은 장천동을 둘로 나누어
--삼산1리와 삼산4리로 분리되었다.
--예전에는 연곡 영진에서 삼산까지 30리 거리가 되고 삼산 입구에서 신배령까지는 40리가 되어 “30리
--면장이요, 40리 이장이다.” 라는 향언이 생길 정도로 삼산리는 골이 많고 넓다.

- 삼산1리 -
○ 싸리골,싸래골(미전동)
--고부소 뒤에 있는 마을. 동학혁명때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진고개를 넘어 와 백운동 입구에서 관군과
--교전중 후퇴하여 이곳에 와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장수가 싸운 골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 장내,장천동(長川洞)
--연곡천이 70리 장곡이여서 장곡을 따라 긴 내가 뻗어있다는 뜻이다. 소금 강 왕기골에서 나온 왕이 죽으
--니 이곳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하여 장내라고도 한다.
○ 그적골
--거절→거저→그적 으로 변했다. 아랫 매바위 골 넘어 있는 골. 옛날 이곳에서 큰 사람이 날 터인데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묘를 써서 큰 사람이 나는 것을 끊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생겼다.
○ 묘재
--삼산초등학교 일대의 소지명
--옛날 이마을을 개척한 전주이씨, 김해김씨, 정선전씨, 경주이씨 네분이 이곳에서 마을의 씨를 뿌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묘재라는 음에 연유하여 왕기 골에서 나온 장수가 두드렝이서 두들겨 맞고
--싸리골에서 싸우다 죽자 장내에 와서 장사를 지내고 이곳에 묘를 써서 생긴 이름
○ 마야골(馬野골)
--삼산초등학교 앞 물건너 큰매바위골과 작은매바위골 사이에서 제일 큰 골. 옛날 역마가 지나가다가
--이곳 들에 묵어갔다고 하여 마을이름이 생김
○ 즘터골
--삼산1리 4반지역 소지명으로 미전동에서 패한 장군의 뼈가 나온 곳. 옹기를 만드는 흙을 즘이라 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옹기를 만드는 흙인 즘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용고기산골
--삼산초등학교 앞 설통바위 위쪽 골. 옛날 이 골에 용고기와 산골이 있었다고 한다. 또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와서 이 골에서 잡아먹고 뼈와 먹다 남은 사람의 고기가 있어서 인고기 산골이라고도 한다.
○ 수터골(水基洞)
--삼산초등학교의 아래에 있는 깊은 골. 골 끝에 주문진읍 삼교리와 경계, 이 골안이 굉장히 넓고 깊어
--험하기도 하지만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다.
○ 통천의 좆골
--수터골 안 전전의 묘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골. 해내지골과 전나무쟁이가 합치는 곳. 골 자체는 다른
--골에 비해 조그마한데 골의 생김새가 통천이란 사람의 성기처럼 생겼다고 한다.
○ 도시터
--삼산초등학교 위에 있는 큰 골로서 계속 들어가면 철갑산 정상이 된다.
--골 안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었고 물이 깨끗하고 좋다고 한다.
○ 호랑바위골
--개진이 묘 골을 지나서 오른쪽에 있는 골. 옛날 이 골 큰바위 위에 올라 가 놀고 호랑이를 잡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연지터
--도시터 위에 있는 골. 삼산4리 두드렝이와 경계지역. 옛날 이 골에 절이 있었을 때 절옆에 연못이 있었
--는데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어 연지터라 한다.

- 삼산2리 -
○ 외동(外洞)
--청학 외동으로 삼산초등학교 소금강분교가 있는 마을
○ 내동(內洞)
--청학 내동으로 소금강 상가지역
○ 절터골
--암자골로 들어가면서 첫 번째 골. 옛날에 이 골에 절이 있었는데 50여년 전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고
--한다.
○ 사주목
--마지막 가는 길에 가지고 가는 밥을 사주밥이라 하는데 이 골은 깊고 마지막에 있는 길목이다. 노루목
--고개를 넘어 퇴곡리 용수골로 가는 계곡
○ 저울대
--암자골에서 흘러나온 물이 절골에 있는 봉에서 합수 되는데 이때 물이 마을쪽으로 흐르면 마을이 흥하
--고 절쪽으로 흐르면 절이 흥한다고 하는 데 병자년 포락에 물길이 아주 마을쪽으로 뚫려 마을은 흥하고
--그바람에 절이 망했다고 한다. 마을과 절쪽을 저울질하는 저울대 노릇을 했다는 뜻

- 삼산3리 -
○ 가마소(부연동)
--삼산3리의 자연부락 이름. 오대산 신배령 신선골에서 발원하여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양양읍의 남대
--천으로 흐르는 물이 이 마을에서 흘러간다. 부연천 가운데 가마처럼 생긴 소가 있어 마을 이름이
--생겼다.
○ 신선골(능무골)
--부연 마을에서 남서쪽에 있는 골. 부연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두로봉 남쪽에 잘록하게 생긴 낮은골.
--골 입구가 능무골이고 골 끝이 신선골이다. 옛날 노장군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신선이 되어 이 골로
--들어갔다고 한다.
○ 불공막골(佛供幕골)
--신선골 안에 있는 골. 능무골로 올라가면서 오대산으로 가는 신선골과 두루봉으로 가는 불공막골이
--있다. 옛날 이 골에서 움막을 지어놓고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골에서 정성을 드린 자리가
--많이 있고 이곳에서 정성을 드리면 풍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 밤남은골
--부연분교 옆 골짜기에 있는 조그마한 골, 옛날 이 마을에 흉년이 들면서 쌀밥은 고사하고 감자도 못먹는
--형편이었는데 이 골안에 사는 한 집에서 는 밥을 해놓고 밥이 한그릇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음이
--변하여 밤나무골이라 한다.
○ 약수터골
--철갑령 서쪽 낙맥 밑에 약수터가 있는 골짜기. 이곳의 약수는 철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
○ 먹우재(먹이재)
--부연분교에서 현북면 어성전리 쪽으로 약 2 km 정도 떨어진 곳. 약수탕으로 넘어가는 재. 옛날 노장이
--타고 다니던 말이 필요가 없게 되어 이 재에 버리니 말이 궁잇에 가서는 먹이를 먹고 가마소에 와서는
--물을 먹고 먹우재에 와서는 호랑이 먹이가 되었다고하여 생긴 이름이다.

- 삼산4리 -
○ 두드랭이(杜陵洞)
--삼산4리의 첫마을로 1반의 소지명. 삼산초등학교와 횟골 사이의 마을 옛날 이마을로 가자면 산 굽이를
--여러굽이 돌아가는데, 산 능선이 많이 뻗어내려 능선 때문에 다른 마을과 연결이 안되고 끊어졌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옛날 왕기골에서 기어나온 왕이 이곳에서 두들겨 맞았다고 함.
○ 횟골
--삼산4리 2반의 소지명. 이 골에서 전후재를 넘어 부연동으로 간다. 옛날 이 골에서 회를 많이 구웠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골에 약수가 있는데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 솔내(송천)
--3반의 소지명. 진고개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곳으로 흐르는데 내가 흐르고 주위에 소나무가 우거져 생긴 이름이다.
○ 진고개
--평창군 진부면 개잔리와 경계지역으로 예부터 땅이 질어 생긴 이름이며 지금은 국도6호선 확포장 공사
--로 많은 관광객 및 차량이 이길을 이용.
○ 반찬골(반찬단지)
--작은 구절이 안에 있는 굴. 이 굴에 짐승들이 많이 살고 있어 마을사람들이 이 굴에서 짐승을 많이 잡아
--반찬으로 이용했고, 또 이 굴에 가면 곰을 잡을 수가 있어 반찬을 이어 먹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왕베리
--솔내마을 앞 냇가에 있는 커다란 바위. 왕기골에서 기어나온 왕이 이바위 (너래반석)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왕기골에서 기어나온 왕이 왕베리에 앉아있다가 솔내에 와서 솔을 베고, 횟골에서 회를 하고
--두드렝이에서 두들겨 맞고 묘재에 모여서 장내에 와 장을 봐 가지고 퇴곡으로 가서 토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있다.
8 퇴곡리(退谷里) - 퇴곡리는 임진왜란 때 군량을 헌납한 곳으로 동지중추의 벼슬을 한 권신 이라는 분이 이곳에 退谷庄을 짓고 살았고 그의 후손 퇴곡공 권칭(權稱)이란 분이 강릉 옥가 노남에서 벼슬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곳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퇴곡리는 연곡천 남북에 위치하여 동쪽은 유등리, 서쪽은 삼산리, 남쪽 은 사천면, 북쪽은 주문진읍과 경계하고 있다.

- 퇴곡1리 -
○ 고대골
--퇴곡분교 뒤에 있는 골짜기. 이 골에는 작은 골들이 많이 있고 바위도 많이 있다. 골말과 접해 있는 마을이라 퇴곡마을이 이곳에서 처음 개척 되어 옛집과 큰집들이 많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 골말
--퇴곡1리 북쪽마을이며 골 안에 있는 마을로 퇴곡에서 제일 처음 생긴 마을이라 경주김씨 집안의 아기
--장수가 태어난 곳이다.
○ 황어대(璜魚臺)
--퇴곡8경의 하나로 옛날 이곳에 황어가 올라와서 놀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인데 물 떨어지는 모습이 굉장
--히 아름답다. 큰 길에서 석대(石臺)가 보이는데 이 석대에 부인들이 돌을 던져서 돌이 올라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 는 속신이 있다.
○ 서정(西亭)
--퇴곡8경의 하나로 옛날에 큰 아름드리 소나무가 정자를 이루었다고 한다.
○ 남확
--퇴곡8경의 하나로 이 골에 있는 바위들이 웅장해 푸르게 보인다고 한다.
○ 남산골
--황어대 위 북쪽으로 큰 바위에 평장최씨들이 “江陵崔氏世宥南山洞” 이란 씨를 새겼다.

- 퇴곡2리 -
○ 듦바위골(擧岩洞)
--퇴곡2리 3반으로 가는 지역 소지명으로 골 입구에 있는 바위들이 모두 들려 있는 것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인데 국도6호선 확장공사로 듦돌들을 모두 깨어버렸으며 이 골안에는 정법사,구월사가 있다.
○ 용소골
--연곡천 남쪽 듦바위골 맞은편 골. 이 골로 계속 올라가면 국립공원소금강에 이른다. 이 골 안에 안용소
--와 바깥용소가 있는데 바깥용소는 골 입새에 있고 안용소는 더 들어가 있다. 옛날 바깥용소의 용과
--안용소의 용이 서로 먼저 승천하기 위하여 싸워 안용소의 용이 이겨 먼저 승천하였다고 한다.
-- 안용소의 수심이 더 깊다.
○ 병수평(兵戍坪)
--삼산1리 금강문 바로 아래쪽 들판이 병수평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병들이 병영을 설치하고 훈련
--하던 곳이라 하여 병수평이라 전하여 오고 있다. 병수평 서남쪽 높은 봉은 봉화재로서 국가의 위급사항
--이나 병영과 병영간의 신호 교환장이었다고 한다.
○ 부처골
--퇴곡분교 서남쪽에 높은 봉이 있는 계곡이 퇴곡8경의 하나이다. 옛날 이 골에 절이 있었고 부처형상의
--바위가 있어 불잔등이라고 했다. 부처 골에 단풍이 들면 산에 붉은 물감을 칠한것처럼 곱고 아름답다.
7 유등리(柳等里) - 버들이,버들골,버들들 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 갯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 마을을 개척한 사람은 조선조 인조 때 권시일 이란 분인데 그는 만년에 이 곳에 와서 도랑을
--파고 수리(水利) 를 열어 많은 논을 일구었다고 한다.

○ 버들이
--유등리 1반 지역 소지명으로 연곡천 남쪽에 있는 넓은 들판 마을이 있는 데 옛날 버드나무가 많아 들을
--개간하여 벼를 천석을 걷을 수 있는 논을 만들었다고 하며 냇가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 쇠맥힌골
--연곡천 남쪽 약물골 윗골인데 옛날 소를 먹이다가 소를 잃어버리고 소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이
--골에 와보니 길이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두리번거리니 소가 골안에서 꼴을 뜯어 먹고 있었다고
--한다. 골이 막혀 소가 더 들어가지 못하여 쇠맥힌 골이라 한다.
○ 골감냉이(甘泉洞)
--유등다리 남쪽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내(川) 일대,연곡 천 북쪽 백운사에서 쌀 씻은
--뜬물이 이 내까지 흘렀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골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황병산이 나온다.
--사태목 및 가랑이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골로 흐르는데 물이 달고 깨끗하여 甘泉洞이라고도 한다
○ 자작나무 수통
--뒷구렁과 소냉이 사이에 있는 귀새.
○ 명막바위골
--절터골 안으로 들어 가면서 오른쪽에 있는 골. 명막이란 새가 많이 와서 놀았다고 한다.
○ 양지마을
--유등리 4반의 소지명인데 연곡천 북쪽에 있는 마을 전체가 양지바른 남향이어서 생긴 이름이며 백운사
--로 들어가는 입구 마을이다.
○ 백운동
--일명 뱀골이라고 한다. 벰베루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골. 이 곳에 백운사 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벰베루
--유등리와 행정리 경계지역인 백운사 입구 아래쪽에 있는 넓은 베루
6 신왕리(新旺里) - 옛날 이곳에는 마을이 없는 허허벌판이었는데, 근래에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어 사람들이 살면서 새롭게
--왕성한 모습으로 일어선다는 뜻에서 마을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 새왕리 (新旺)
--신왕리 본동의 소지명
○ 부귀동(부귀터)
--신왕리 3반의 소지명으로 부하고 귀하게 일어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이다.
○ 마암동(馬岩터)
--신왕리 4반 지역의 소지명으로 마을 형국이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
--이 마을 앞산에 말바위가 있다.
○ 요법(要法)
--마암동에서 10여 km 안쪽에 있는 소지명으로 옛날 이곳에 요법사 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경내가
--3,000여평이나 되고 쌀 씻은 뜬물이 마암동까지 흘렀다고 한다. 지금도 절터에 주춧돌로 쓰이던 돌이
--있는데 (그 돌은 8~9자 정도 되는 큰 돌이다) 이 절이 빈대로 망하였다고 한다.
○ 수청동(水淸洞)
--소금강 노인봉의 남쪽지역. 신왕리의 맨 마지막 골로서 여기를 넘으면 평창군 도암면 황병산이 나오는
--데 이 골짜기로 흐르는 물이 깊고 맑게 보여 수청동이라 불려지고 있으며 6.25 이전에는 10여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5 행정리(杏亭里) ▶ 행정리(杏亭里)
- 이 마을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수령:400여년)가 있었는데 정자같이 그늘을 이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만들어 준데서 마을이름이 생겼다.

- 행정1리 -
○ 환적골(還笛골),한재골(旱災골)
--행정1리 본동과 송림2리 사이에 있는 골로 옛날 이곳에 숲이 우거져 목동들이 소를 먹이고 돌아갈 때
--나무 한짐 우려메고 풀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돌아가는 목가적인 풍경에서 생긴 이름이라 하기도 하며,
--한재골 이란 골짜기에 논이 있는데, 이 논이 천수답이여서 가뭄이 자주 들어 한재가 심하다고 하여
--한재골이라고도 한다.
○ 본동
--행정1리 본 마을이란 뜻이다.
○ 옹기점골
--행정1리 3반의 소지명. 몇 년전만 하여도 토기를 만들어 구웠으며 지금은 폐쇄된 상태이다.
○ 청룡뿌리
--주식회사 삼풍이 있는 곳으로 바위의 생김새가 청룡의 뿔과 같이 생겼다 고 하는데 이 바위에 홈이 패어
--진 것이 여자의 성기 같아서 그 끝을 누르면 동네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 동네
--어른들이 그 뿔을 흙속에 묻고 마을 청년들이 건들지 못하게 지키기도 했다고 한다.

- 행정2리 -
○ 가두둑
--행정2리 전체 자연부락 명. 옛날 가동나무를 밭에 많이 심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서낭골
--행정2리 3반의 소지명. 서낭당이 있는 골 이라는 뜻이다.
○ 갓바위
--행정리와 유등리 사이에 있는 바위. 이 바위의 생김새가 탕건처럼 생겨 서 붙여진 이름이다.
○ 정쇠골(正鐵골)
--행정2리 5반의 소지명
4 송림리(松林里) - 옛날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생긴 이름으로 연곡천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은 방내리, 서쪽은 행정리와 신왕리, 남쪽은 사천면, 북쪽은 주문진읍과 경계하고 있다.

- 송림1리 -
○ 지리쇠
--송림1리 1반 지역의 소지명. 방내리에서 송림1리로 오는 첫마을.
○ 잿밭
--송림1리 2반지역 밭이 언덕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송림골
--잿밭 위에 있는 마을. 산 줄기가 쭉 나와 있는 형국이 猛虎出林形局 으로 되어 있어 그 아래 골짜기 솔밭
--어귀에 호랑이가 나와 앉았다고 함.
○ 가마골(가매골)
--송림골 위쪽골. 송림리에서 제일 큰 골. 이 골이 가마처럼 생긴 골인 데 골 안에는 작은 골이 3개가 있다.
○ 당골
--가마골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골, 옛날 이 골안에 큰 소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그 옆에 당을 지어 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 구천
--현 묘포장 일대 지리쇠 위에 있는 마을과 논, 옛날 연곡천이 이곳으로 흘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용마구덩이
--아랫초시 앞에 있으며 퇴곡에 있는 경주김씨 집안에서 태어난 아기장수가 타고 다닐 용마가 태어난
--곳이라는 뜻. 이곳에서 태어난 용마가 왕베루(방내2리)에 가서 "왕왕“ 거리고 벰베루(유등리)에 가서
--빙그르 한바퀴 돌고 퇴곡으로 올라가다가 아기장수가 죽었다고 하자 용마가 고부소에 가서 빠져
--죽었다고 한다.
○ 아랫초시
--연곡천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옛날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점차
--줄어 마을에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니 마을이 황폐해지고 해당화,찔레 등 가시덩굴이 많이 자라 초시
--(草柴)란 이름이 생겼다.

- 송림2리 -
○ 연가마골
--현 정수장 자리. 가마골 위쪽 골. 옛날에 이 골 어귀에 재기와를 구웠다.
○ 민석골(面所골)
--구사목골 내 건너 북쪽 골. 딴봉과 골말 사이 골. 옛날 이골에 면사무소 가 있었다고 한다. 일명 양지쪽
--에 있다하여 양지골이라고도 한다.
○ 구사목골(丘山목걸이)
--연곡천 북쪽 행정리와 경계지역. 옛날 이곳에 석축을 쌓았고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 웃둔지(上屯지)
--면소골 안에 있는 마을. 현재 동양레미콘이 있는 뒷 마을. 송림리에서 제일 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골말
--송림2리 2반,3반의 소지명. 면소골 아래 골.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
○ 딴봉
--웃둔지앞 면소골 어귀에 있는 봉. 마을과 외따로 떨어져 있는 봉이란 뜻인데 지금은 이곳에 집들이
--많이 들어와서 마을 한가운데가 됐다.
○ 유목정(楢木亭)
--딴봉 마을 한가운데 큰 소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옆으로 큰 물이 흐르고 정자가 있는데 옛날 학이 이곳
--소나무에 새끼를 쳤다고 한다. 정자 뒤에 느릅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 윗초시
--아래초시 위에 있는 마을로 초시의 유래는 아래초시와 똑같다.
○ 범골
--윗초시에 있는 골로 이 골안에 큰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에서 범이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한다.
--이 골안에 세 골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골이 위범골, 가운데 있는 골이 사이범골, 동쪽에 있는 골이
--동쪽범골이다.
○ 방축골(방치골)
--웃초시에 있는 골로서 옛날 이곳 논이 있는 들판 한가운데 못이 있어서 뚝을 쌓았다고 한다.
3 동덕리(冬德里) - 동원최씨 문중에 극림 이라는 분이 고려조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 하면서 해안으로 남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와 숨어 살면서 선조의 유지를 계승 진작하고 유덕을 흠모하는 뜻으로 동덕사(同德祠)를
--세웠는데, 그 후 이 사당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同’ 자가 음이 같은 ‘冬’자로
--변자되어 쓰여지고 있다.

- 동덕1리 -
○ 본동(本洞)
--동덕리는 옛날 지금의 6번국도 남쪽 연곡초등학교 부근에 밀집하여 생활하였으나, 1936년 병자년
--포락때 마을이 침수되어 여러곳으로 분산 되었다고 한다.
○ 장터거리
--연곡주유소와 동방냉동 인근 지역으로 지금으로부터 약150년전부터 5일장이 성시를 이루었으나(당시는
--주문진읍 장은 없었다고 함) 주문진읍에 5일장이 개설됨으로 자연히 장터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 동덕2리 -
○ 강해평(江海坪)
--연곡천 하류와 바다에 접해 있는 들이란 뜻으로 연곡해수욕장 부근
○ 남평(南坪)
--연곡해수욕장이 있는 넓은 들, 신왕저수지 물이 남평보(南坪洑)와 합류하여 이곳으로 내려온다.
○ 궁바다
--하평 부근으로 옛날 논이 생기기 전에 넓은 물 웅덩이가 있어 궁개라 하여 이름이 불려졌다.
○ 도방골
--동덕2리 3반 지역. 마을의 형국이 아주머니들이 바느질할 때 쓰는 도방구리처럼 생겨 불려진 이름이다.
○ 샘골
--도방골 동쪽에 있는 골. 사천면과 경계지역으로 옛날 이곳에 좋은 샘이 있었다.
2 방내리(坊內里) - 연곡면사무소의 소재지로 방축(防築) 안쪽에 있다하여 坊內里 로 불려지고 있으며 마을이 넓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쪽은 영진리, 서쪽은 송림리, 남쪽은 동덕리, 북쪽은 주문진읍과 경계하고 있다.

- 방내1리 -
○ 성안골(城內)
--면사무소에서 서북쪽으로 골이 세 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골이다. 옛날 임금이 이곳에서 피난생활
--을 하면서 성을 쌓았던 안쪽마을이라는 뜻이다.
○ 왕적골(왕제골)
--성안골 동쪽에 있는 골로 면사무소 서쪽에 있으며 지금도 골안에 가서 땅을 파면 옛 기와장이 나온다고 한다.
○ 가랑골
--성안골 서쪽에 있는 골이다.
○ 서낭재말(城下洞)
--현 면사무소 부근으로 옛날 방내리 서낭당이 있었던 밑의 마을이다

- 방내2리 -
○ 향교말(校洞)
--생기말로 와전돼 불려지는데 방내2리 전체를 일컫는다. 옛날 이곳에 향교가 있었다고 한다.
○ 왕베루(왕베리)
--향교말 위 송림1리 하초시(下草柴) 앞 용마(龍馬) 구덩이에서 태어난 용마 가 퇴곡으로 가기 전에 이곳
--에서 “왱” 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넓은 너래 반석으로 되어 있다.
1 연곡면 고구려 西紀 313년
: 支 山 縣
신 라 西紀 757년
: 溟州嶺縣
고 려 西紀 1178년
: 連 谷 縣
조 선 西紀 1896년
: 連 谷 面
1955년 1월 1일 : 강릉군 시 승격으로 명주군에 편입
1983년 2월 15일 : 방내리 일부가 주문진읍으로 편입
1995년 1월 1일 : 법률 제4774호 도농복합형강릉시설치조례에 의하여
강릉시 연곡면으로 개칭

연곡은 원래 연곡현의 지역으로 조선조 때는 연곡면이 되어 동덕역, 현내, 마곡의 3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때 동덕리, 방내리, 삼산리, 송림리, 신왕리, 영진리, 유등리, 퇴곡리, 행정리, 등 9개리로 개편하였다. 연곡은 강릉에서 북쪽으로 약 30여리 떨어진 곳으로 강릉의 북서간에 위치하여 동쪽으로는 동해바다, 서쪽으로는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남쪽으로는 강릉시 사천면, 평창군 도암면(대관령면), 북쪽으로는 강릉시 주문진읍, 양양군 현북면과 접해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연곡면은 북쪽 30리에 있다 본래 고구려 지산현(支山縣)이며 사곡(賜谷)이라고도 한다. 고려 현종때 지금의 명칭으로 고쳐서 그대로 예속시켰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대동지지(大東地志) 권 16(古山子편)에는 "北三十里本陽谷景德王十六年改支山爲溟州領高麗太祖二十三年改連谷顯宗九年仍屬"이라 기록되어 있다. 연곡은 백두대간 준령인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로 뻗어내린 줄기와 신배령에서 뻗어내린 줄기에 있는 마을이다. 연곡 고을은 크게 두 줄기에서 내려와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신배령에서 내려온 줄기는 부연동(가마소 마을)을 이루고 철갑령에 막혀 독립된 고을을 만들었고, 동대산에서 내려온 줄기와 노인봉에서 내려온 줄기 사이에 펼쳐 있는 마을이 연곡의 주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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