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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운

문화/체육 강릉의 역사인물 강릉의 12향현인물 최치운

최치운

최치운(崔致雲)
  • 경호조은(鏡湖釣隱)
  • 출생년도1390년
  • 사망년도1440년

조선조의 문신으로 자는 백경(伯卿)이고, 호는 경호조은(鏡湖釣隱)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충무공(忠武公) 필달(必達)의 후손이며, 한주(漢柱)의 현손(玄孫)이고, 할아버지는 좌윤(左尹) 원량(元亮)이며, 아버지는 생원 안린(安麟)이다.

최치운은 뜻을 굳게하고 학문에 힘써 성리학에 매우 심취하였는데, 태종 8년(140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태종 12년(1412)에는 향유(鄕儒) 68인과 더불어 강릉향교 중건을 건의하는 공장(供狀)을 올리기도 하였다.

태종 17년(1417)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처음 관직으로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에 등용된 뒤 집현전(集賢殿) 수찬(修撰)이 되어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세종 15년(1433)에 경력(經歷)으로 평안도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 최윤덕(崔閏德)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오랑캐 정벌에 공을 세우고 돌아와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를 거쳐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 공조(工曹),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냈으며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세종 21년(1439)에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계품사(計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오랑캐 회유에 관하여 의논했으며, 같은해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이 되고 그 후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하여 외교적 공적을 쌓았다.

왕명으로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고 율문(律文)을 강해(講解)하는 등 형옥(刑獄)에 관해서 왕의 자문에 응했고, 뒤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한편 최치운이 술을 지나치게 즐기자 세종은 친히 계주시(戒酒詩)를 지어 주면서 절제를 권유하였는데, 이후부터 그는 그 시를 벽에 걸어 놓고 출입할 때마다 이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인조 23년(1645)에 강릉 향현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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