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정보
소개
이 서원은 공자·주자·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학생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1556년(명종 11)에 창건되었으며 창건발의는 함헌(咸軒), 최운우(崔雲遇), 관찰사 윤인서(尹仁恕), 강릉부사 홍춘년(洪春年)이고, 창건한 연유는 이곳의 지명인 구산(邱山)이 공자와 관계있는 중국의 구산(丘山)과 같다하여 공사묘우(孔子廟宇)를 짓기로 하고 그 이름을 오봉서원이라 하였다.
처음에는(1562년 명종 17) 공자 단향(單享)이었으나 1782년에 주자(朱子), 1813년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자 공자의 영정은 향교로 옮겼고, 주자와 송시열의 영정은 연천의 임창서원(臨彰書院)으로 옮겼다. 1902년(광무 6년)에 고종의 '충현(忠賢)을 제사치 아니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말에 따라 다시 제단을 설치하였으나 3년 뒤 홍수로 파손되었다. 1914년에 집성사(集成祠)를 중건하였고, 그 후 칠봉사(七峰祠), 강당(講堂) 등을 건립하였다.
서원의 규모는 묘우(廟宇) 3칸, 전랑(前廊 - 내삼문과 연결된 건물)과 신문(神門) 5칸, 강당(講堂) 10칸, 좌우재랑(左右齋廊) 각 6칸, 풍영루(風詠樓) 10칸, 서책고(書冊庫) 2칸, 대문 2칸이고, 집성사(集成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익공집으로 되어 있고, 칠봉사(七峰祠)는정면 1칸, 측면 2칸으로 역시 이익공집으로 되어 있다.
기적비는 1806년(순조 6년)에 건립한 것으로 판서 이만수(李晩秀)가 찬(撰)하고 제학(提學) 조윤대(曺允大)가 썼으며, 묘정비는 1856년(철종 7)에 건립한 것으로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찬하고 강원도관찰사 이종우(李鍾愚)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