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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4.29, 조회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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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감하였던 강릉 학생 항일운동의 역사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함문숙
내용 일제하의 강릉의 전역에서 소년, 소녀, 청년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내 나라를 광복하자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독립운동은 3.1기념 독립 항쟁, 6.10기념 반제 운동, 5.1 메이데이 소요로 격하시킨 대대적인 만세운동 신문보도는 조선총독부 주체적 기록이기 때문에 문자화되는 것이 제한되었어도 독립 의지가 강하게 표현된 신문보도와 총독부 기록 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강릉농업학교에서는 일본인 교사들의 횡포가 심하여 1930년부터 1933년에 이르기까지 저항과 맹휴가 발생하였습니다. 십대의 소년들의 항일활동은 1930~1933년 당시 민족주의, 사회주의 운동, 비밀결사, 독서회, 야학 등 다양한 항일운동이 강릉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있습니다. 검경이 예의주시하며 감시하고 언행 사찰한 보도와 필사적 경계를 한 이유가 있으나 독립운동과 연계하여 보도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강덕선, 권혁인, 김성렬, 김창회, 김천회, 김혁래, 김형도, 민병태, 박연교, 박용태, 심양섭, 염재근, 이동언, 최건영, 최선장, 최호섭, 최재소, 박병수, 함귀래 등등)에 이감되었고, 함흥형무소로 이감된 사상수 명단을 찾으면 강릉 학생들의 이름도 나올 것입니다. 일제하 강릉경찰서 심문조서에도 자세한 항일 기록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강릉의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 기자들도 신간회 활동과 비밀결사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경서고비 제8613호(1934년 2월 7일)를 비롯하여 신문보도 명단을 확인하면 강릉학생들이 1945년 광복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릉의 곳곳에서 일어났던 학생 항일운동 역사가 더욱 자세하게 기록되고, 기념되고, 강릉시 시티튜어에도 반영되어 항일운동 역사의 도시로 강릉시가 더욱 자랑스러워 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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